한참 잊고 있었던 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던 일...
저는 대인기피증이 있습니다.
저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중고등학교는 생각보다 크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하지 못하는 정도,
그냥 친구가 한 명밖에 없는 정도,
누군가의 괴롭힘의 대상인 정도 이니까요.
드라마에서 보는 그런 연출과는 상당히 다르고 느낌도 다릅니다.
적어도 때때로 누군가 챙겨주는 사람은 있으니까...
적어도 하나의 단체의 구성원이라는 소속이 있으니까...
설령 빨리 그 시간이 지나가버리기만을 바랬을지라도...
그저 정해진대로 움직이면 되는 시간이니까...
대학에 진학하였을 때부터 문제는 심해졌습니다.
한 학기에는 아예 식당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대인기피증이 심해져서 굶고 다녔습니다.
뭐.. 그래도 대학은 그저 수업 듣고 집에 가고 시험 보고... 그냥 사람들과 엮이지 않아도 졸업장이 나오는 곳입니다.
조별 과제 같은 것은 무리였지만...
방학이면 집에서 2달간 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수염도 깍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집에 오면 방에 숨어있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
어느날... 대학원생 오리엔테이션 행사에 갔습니다. 사람이 가득한 행사장...
거기에 제 자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혼자서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연구실을 들어가야 합니다.
대인기피증인 사람이 그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지도교수님 연구실 밖에서 1주일이나 서성이고... 그제야 문을 열었습니다.
아.. 노크를 안 했다.. 다시 닫고 노크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음... 후에 들었지만 지도교수님도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도 노력하였고, 지도교수님의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아무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는 조언으로 어느 정도 극복하였습니다. 그 말이 어쩌면 그때까지 제가 가장 알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이 저를 비웃고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금도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냥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아무도 관심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좋은 선배들의 배려 덕분에 졸업할 때는 사회에 풀어놔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정도까지는 나은 것 같습니다.
그 후로도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근본적인 것은 변하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두려움일 뿐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 때마다 도전을 두려워하여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안정된 선택을 하였고, 그러기에 저는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선택은 저에게 안락을 가져오지만, 한편으론 아무것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에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 사실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들에게 자신이 틀렸다는 것, 모른다는 것을 알려지고 싶지 않기에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잘못과 무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피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도전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기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부수고 부딪히고 스스로 깨져가는 과정에서 배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걸 포기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하기 싫은 일 하지 않아도, 큰일이 일어나진 않습니다. 하지 않을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의 끝에 제가 원하는 답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호 잘 지키는 비둘기 (0) | 2024.04.15 |
---|---|
퇴사했습니다. (0) | 2024.04.15 |
삶이란 (0) | 2023.11.29 |
추석과 코로나 (0) | 2023.09.29 |
공심채 볶음 - 연성결, 몽테크리스토 백작 (0) | 2023.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