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는 분이 식도부터 위, 십이지장까지 궤양 때문에 고생하신다고 하시길래 관심이 생겨서 의약 화학책에서 항궤양제 부분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냥 흔하다고 생각해서 큰 병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1960년대까지만 해도 효과적인 약물이 없어서 천공성 궤양으로 사망한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스트레스, 음주, 식습관이 중요한 원인이라 추측하지만 분명한 증거가 없고, 증거가 알려진 원인은 비 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와 (요구르트 광고 때문에 좀 유명한) 헬리코박터 파이로리입니다. 현대인 중에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속 편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원...
잡소리는 그만하고,항궤양제 중, 책에서 소개한 H2 길항제를 개발한 이야기가 정말 경이롭습니다. 보통 신약개발은, 타깃 질환을 정하면, 그 질환에 대한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거기서 적절한 타깃을 선택하고 그 타깃이 올바른지 검증을 하고, 거기에 적합한 약물을 찾는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많습니다. 고대부터 전해오던 문헌이나 전통의학, 민간 처방에서부터 특정 천연물(혼합물)이 특정 질환에 효과가 있음이 알려져 있을 때 그 정보로부터 유효한 화합물을 분리해낸 후, 최적화 과정을 거치는 경우도 있는데 (예: 아스피린) 이런 경우는 타깃 단백질은 모를 수도 있습니다. 단백질에 대한 연구 결과가 부족한 시대에는 (지금도 해당하지만) 타깃 단백질을 모르거나, 알지라도 단백질의 구조나 분자적인 메커니즘을 모르고 신약개발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H2 길항제 시메티딘은 항궤양 치료에서 첫번째 혁신적인 약물로, Smith Kline and French (SKF)에 의해 1964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시작 시점에서 선도화합물이 없었고, 심지어 히스타민 수용체 (H2)에 대해서도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히스타민은 세포 피해가 일어났을 때 방출되고, 혈관 확장을 자극하며 투과도를 증가시켜서. 백혈구가 혈관으로부터 빠져나와 피해를 입은 조직에 공급되어 감염과 싸우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알레르기 반응과 염증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당시 히스타민이, in vitro에서 위산 분비를 촉진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어서, SKF 팀은 위에 히스타민 수용체가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항 히스타민약물이 궤양을 치료하는데 효과적일 것이라 제안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개발되었던 항히스타민제는 위한 분비를 억제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많은 연구자들은 위장 벽 세포에 히스타민 수용체가 없거나, 있을지라도 아세틸콜린, 가스트린 수용체가 있기에 히스타민 수용체가 그리 적절한 타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선도 화합물도 없고, 타겟 단백질의 존재 여부도 불투명하고 기존 유사 타깃 약물들이 효과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SKF 팀은 위궤양에 대한 치료제로 항 히스타민제를 개발합니다. 그래도 근거는 있었습니다. 당시에 발견된 항히스타민제가 모든 알려진 히스타민의 작용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히스타민 수용체는 기존에 발견된 H1 수용체뿐만 아니라, 이와는 형태가 다른 수용체 (H2)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타깃 단백질 모르고 약물을 찾을 수 있을까? 라 질문한다면, 옛날엔 대부분 그렇게 했다.라고 밖에 답할 수가 없네요. 다양한 물질을 사용해서 실험을 하고 거기서 원하는 효과가 나왔다면 그중에서 선도 화합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선도화합물을 가지고 시작하는것이 아니라, 단백질 구조 없이, 약물을 "설계" 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약물은 단백질과 상보적입니다. 단백질의 구조를 보면 적절한 약물을 찾을 수 있지만, 반대로 약물을 보면 단백질 포켓 구조를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SAR (structure-activity relation) 연구입니다. 여기서의 구조는 단백질 구조보다는 분자 구조를 의미합니다.
일단 히스타민과 기존에 알려진 H1 (히스타민 수용체)의 구조 활성 관계에서 히스타민 수용체에 결합하기 위한 필요조건을 찾습니다. 그리고 히스타민 유사체들을 가지고 실험을 통해서 H2를 자극하여 위산을 방출시키는 약물의 조건(SAR)을 찾습니다.
수용체에 결합하는 약물은 agonist (작용제) 와 antagonist (길항제)로 나뉘는데, 여기서 히스타민이 결합하는 단백질은 히스타민 수용체이며, 히스타민은 작용제입니다. 항 히스타민제는 길항제입니다.
히스타민의 작동 방식에 대한 예상 모델에서, 유도 맞춤이 제안되었습니다. 즉, 히스타민이 수용체에 결합한 후 상호작용을 강하게하도록 수용체의 구조가 변형되고(유도 맞춤, induced fit) 그 구조 변화가 위산 분비를 촉진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수용체에 결합할지라도 유도 맞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위산 분비가 촉진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용체에 결합하되, 구조 맞춤을 일으키지 않는 물질을 찾는 전략을 시도했지만, 하지만 이 전략으로 개발한 화합물 중에는 적절한 길항제가 없었습니다.
히스타민에 대한 세부 구조를 바꿔가며 유사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작용제 결합부위와와 별개로, 길항제 결합 부위가 있는 모델이 제안되었고, 작용제 결합 부위 대신 길항제 결합 부위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약물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유사 구조에 대한 실험 및 여러 활성, 선택성 및 활성, ADMET 최적화 작업을 거쳐서 시메티딘이 개발되었습니다. 구체적인 과정은 너무 섬세하고(토토머까지 고려하다니...) 복잡해서 일단 생략하겠습니다.
SAR 연구- 실험을 통해서 약물의 구조와 활성 관계를 밝혀가는 과정을 보면 이런게 진짜 신약개발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인공지능 신약개발로 신약개발 분야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인공지능 신약개발 분야에선 QSAR에 대해 좀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SAR는 매우 섬세하고, 분자의 각 작용기, 원자 하나하나가 하는 역할까지도 밝혀내는 과정인데, 이런 것을 보면 인공지능 QSAR 모델이 상당히 회의적으로 느껴집니다.
이 연구 자체는 H2 단백질의 존재 여부조차 모르고 진행된 일이지만 단백질 구조 기반 시뮬레이션으로 연구하던 제 입장에선 만약 단백질 구조를 안다면 이 연구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시뮬레이션으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합니다. 길항제-작용제의 결합 위치가 따로 있다면, 구조를 보고 그것을 판단해낼 수 있을까? 시뮬레이션으로 작용제 결합 위치에는 붙지 않고 길항제 결합 위치에만 붙는 분자를 선별할 수 있을까? 같은 일들이 제가 해야 할 일이겠죠. 상당히 정밀하고 섬세한 모델링이 필요한 일인데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여전히 공부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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