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에 대한 이야기에서 흔히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신약개발은 1조 이상의 비용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모되지만 성공률은 5% 정도로 낮다.
1만 개의 분자 중에서 임상을 통과하고 약으로 시판되는 것은 1개 정도밖에 안된다.
그래서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 무언가 (인공지능을 도입한다거나) 한다."라고 합니다.
출처마다 구체적인 숫자들은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합니다.
비용, 시간을 줄이고 성공률을 높이려면 대체 어디서 얼마나 시간과 비용이 들고 왜 실패하는지 분석해야겠죠.
보통 신약개발 과정을 이야기할 때, 위의 그림처럼 타깃 선정, 타깃 검증, 히트 생성, 리드 선정, 리드 옵티마이제이션 , 동물실험 (비임상 혹은 전임상), 임상, FDA 승인 후 시판 (임상 4상) 같은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의약화학 책에서 사례를 보다 보면, 이런 과정을 따르지 않는 사례들도 여럿 있습니다. 단백질에 대한 연구 결과가 많지 않은 시기에 한 연구라서 그런 점도 있긴 하지만, 그런 접근 방법들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질병은 다양하고, 약물 탐색 방법도 다양합니다. 타깃 단백질에서부터 출발하는 방법도 있지만, 타깃 단백질을 모르고 약물에 대한 실험 기반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천연물이나,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헌 자료에서 약물을 찾기도 합니다. 중국의 투유유 여사가 옛 문헌으로부터 개똥쑥이 말라리아 치료에 유효하다는 것을 밝혀낸 사례가 있습니다. 천연물을 그냥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독성 등의 이유로 구조를 변형시키기도 합니다. 아스피린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이 해열 작용을 하는 것은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나, 고대 그리스의 문헌에도 기록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후에 약효의 주성분이 살리 신임이 확인되었지만, 위벽을 자극하는 문제가 있어 부작용이 줄어들도록 최적화한 것이 아스피린 (아세틸 살레 실산)입니다. 아스피린은 최초의 합성 의약품으로 아스피린의 발명을 현대 의약의 시작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스피린이 처음 발명될 당시엔 타깃 단백질이나 약리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추후 연구로 점점 더 많은 효능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질병의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임상으로 검증된 효능입니다.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면, 질병의 메커니즘이 검증되기 위해선 위해선 해당 메커니즘에 관련된 약물이 발견되고, 그 약물이 임상적으로 효능이 있다는 증거가 나와야만 합니다.
신약개발이 실패하는 이유는 주로 치료 효과가 없거나 약하거나, 독성 혹은 부작용, PK/PD입니다. 아무런 독성이 없는 물질은 없고, 독성이 문제가 되는 농도 이하에서 치료 효과가 나타나야 합니다. 치료 효과가 약한 원인은, 질병 메커니즘에 대한 잘못된 이해, 잘못된 타깃 선정 및 검증, 부적절한 질병에 대한 동물 모델, 적절하지 않은 환자 선정, 약물 디자인 실패 등이 있습니다. PK/PD는 질병이 일어난 부위에 약물이 제대로 공급되는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경구 투여 제라면 체내로 흡수가 되어야 하고 과도한 대사가 일어나지 않으면서 원하는 조직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하고, (뇌의 경우 BBB 투과 여부) 체내에서 적당한 배출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체내에 흡수되지 않는 약도 있고, 수면제처럼 바로 분해되거나 배출되어서 투약 중일 때만 효과가 일어나야 하는 약도 있습니다. 그런데 PK/PD는 동물 모델과 인간 모델이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상업적 문제나, 특허나 기타 전략적인 문제도 있긴 하지만, 여기선 연구에 대한 이야기로 한정하겠습니다.
신약 개발 실패 원인 분석과 개선에 대해선 AstraZeneca의 논문을 참고해볼 수 있습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nrd4309
https://www.nature.com/articles/nrd.2017.244
신약 개발이라고 하면, 어쩌면 약물 후보가 되는 분자를 설계하거나 탐색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discovery 혹은 design이라는 이름의 신약개발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develop이라는 이름의 신약개발에선 분자를 하는 일은 사실은 그리 큰 부분이 아닙니다.
성공률을 말할 때 흔히 많이 사용하는 그림 중 하나입니다. 화학 기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일 앞부분 drug discovery입니다.
수천 개 이상의 hits 중에서 하나가 임상을 통과하고 판매 승인이 납니다. 실제로 돈과 시간이 많이 들면서도 제일 위험한 영역은 임상 시험입니다. 그리고 임상에서의 중요한 실패 원인은 독성 및 부작용 농도 이하에서 약효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전임상까지 진행했다면, 분자는 (주어진 요구조건에 대해서) 잘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주어진 요구조건조차 만족하지 못했다면 그 이후로 진행하지 않았겠죠. 그리고 분자 탐색 및 디자인에서 사용되는 혹은 판매되는 돈은 수십억 원 아래입니다. 임상에서 소모되는 수백억과 비교하면 별로 크지 않습니다.
조건에 맞는 분자를 찾는 것도 어렵긴 하지만, 그것을 빠르고 저비용으로 해주는 정도로는 신약개발 전반에서 크게 경쟁력을 높였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결국은 임상 실패율을 낮추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동물 실험 결과가 인간에 대해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여럿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다른 생명체라는 점이 적지 않습니다. 쥐는 털 있는 작은 사람이 아니니까요. 또 하나는 부적절한 질병 동물모델입니다. 사람은 병에 걸려서 병원에 오지만, 그 병에 대한 치료효과를 보기 위한 쥐는 같은 병에 걸려있지 않습니다. 어떠한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서 병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그 병에 대한 원인이 실제 환자와 일치할까요?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서 병을 일으켰다면 그 원인을 알고, 그 원인에 적절한 약을 처방할 것입니다. 이럴 때는 치료효과가 높지만, 과연 그것이 일반 환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가는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즉, 병의 메커니즘을 명확히 이해해야 하고, 임상에서도 그 메커니즘에 해당되는 환자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타깃 질환 및 단백질에 대한 검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검증은 임상을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임상적 결과로부터 약물을 개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들 약물 재사용이라고 하는 (drug repurposing, repositioning) 방법입니다. 약물에 대해 알려진 사이드 이팩트를 가지고 이를 적응증으로 하여 개발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물질특허를 낼 수 없어서 이미 물질특허를 보유한 회사가 아니거나, 특허가 만료된 약물이 아니라면 상업이나 전략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천연물도 비슷한 사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스피린의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여기서도 특허 회피 전략이 가능합니다. 약물 재사용의 경우 on-target, off-target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약물의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적응증이 기존에 알려진 적응증과 같은 타깃일 경우가 있고, 다른 타깃일 수도 있습니다. 약물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단백질에만 결합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백질의 패밀리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데, 알려진 단백질의 패밀리는 1000~2000개 정도이고, 인간 단백질은 2만 개가 넘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사람의 단백질 하나당 10~20개 정도의 유사 단백질이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조가 유사한 단백질들은, 약물에 대한 결합 여부도 유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전체 구조가 달라도 포켓 구조는 유사하거나, 약물의 구조 자체가 전혀 다른 포즈로 2개 이상의 단백질에 결합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off-target이라면, 최적화를 거치거나, on-target이라도 스케폴드 호핑 같은 방법을 통해서 특허를 피할 수 있는 물질을 다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알려진 약물을 통해서 특정 질환에 대해 효과가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고, 그 약물이 선정한 타깃에 대한 약물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면, 타깃 단백질 선정 결과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약물을 리 디자인해서 새로운 분자를 만들고, 새로운 약물이 이 단백질에 대해 기존 분자와 유사하게 결합한다면 이 약물이 적절한 후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리퍼포징의 방법론을 타깃 검증에 사용한 후 약물 재설계를 하는 것에 대해서 전에 같이 일하던 분께 들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좋은 전략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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