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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에 대한 몇가지 의문들

Novelism 2022. 1. 2. 20:36

 

 신약개발 연구를 시작하고 나서 답답한 일이 참 많습니다. 

 일단 뭘 알아야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는데, 제대로 공부한 게 아니다 보니 별로 아는 것이 없네요.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해도, 주변 사람들도 신약개발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없고, 사람들마다 이야기도 달라서 대체 무엇이 맞는지도 모르겠네요. 굳이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원래 연구라는 일 자체가 사람들마다 관점이 다른 것이기도 하니까요. 

 

 신약개발은 연구일 뿐만 아니라 사업이고, 사업에서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 자신을 포함해서 제가 아는 주변 이야기는 대부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한다기보다는, 혹은 남들이 이렇게 하니까 한다. 이런 거 가져오라니까 한다. 정도로 사업을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돌고 돌아서 서로가 서로를 따라 하기도 하죠. 결국 추적해가면, 근거가 없는 것을 하고 있는 상황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전에 있던 회사에선 저에게 분자 생성을 하라고 시키면서, 저한테 합성 계획이 다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분자 생성을 했더니 생성된 분자는 합성이 어려우니 그 분자와 유사하게 생긴 분자를 ZINC에서 찾아서 구매하자고 하더군요.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따라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 남들이라는 곳은 분자 생성에 대한 이해가 제가 있던 연구실보다도 부족한 것 같은데요. 저는 그나마 분자 생성 논문이라도 출판된 게 있고, 분자 생성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도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고민한 결과가 분자 생성을 히트 탐색에 사용하기 어렵다 였죠.) 뭐 사실 저런 방법에 대한 레퍼런스가 인실리코 메디슨의 논문에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건 분자 생성 기술 수준이 더 안 좋은 초기 연구였고, 그 논문 이후엔 인실리코 메디슨도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럴 거면 생성한 분자가 아니라, 이미 active로 알려진 분자와 유사한 분자를 ZINC에서 찾는 게 나은 거 아니냐고 했죠. 저도 뭘 알고 일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근거도 없이 남들이 한다는 이유로 따라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의문점들과 엉성한 저의 대답들입니다. 

1. hit compound와 lead compound라는 용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통 hit는 설계된 assay에서 유효한 물질, lead는 hits 중에서 신약 후보로서 잠재력이 높은 물질을 선정 (혹은 hits를 조금 최적화) 한다고 하지만, 정작 신약개발 사례에서 보면 hit, lead 같은 내용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연구에선 초기 물질을 하나 선택하고, 바로 optimization으로 넘어갑니다. 그 유효한 물질은 bio assay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기존에 알려진 물질인 경우도 있습니다. 해당 단백질이 효소일 경우는 기질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기존에 논문으로 보고된 물질이나, 펩티드에서 출발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추측은, hit라는 개념은 High Throughput Screen (HTS)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HTS 이외엔 hit가 대량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다른 방법을 사용할 경우엔 굳이 hit, lead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효소 억제제를 개발할 경우 기질 혹은 반응 중간체와 유사하게 생긴 분자를 시작 물질로 사용할 수 있겠죠. 

 

2. hits 탐색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인공지능 신약개발 회사들은 대부분 신규성이 중요하다며 새로운 hits을 찾겠다고 하는데, 정작 제가 의약화학자와 같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그분은 자신이 분자를 최적화하면서 특허를 피할 수 있으니, 굳이 hits 단계에서 특허성 검토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더군요. 다른 회사들도 가상 스크리닝으로 최적화가 필요 없는 완전한 물질을 탐색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어차피 최적화 시에 특허를 피할 수 있다면, 애초에 기존에 알려진 해당 타깃에 결합하는 분자에서 시작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점입니다. 물론 그런 물질 중엔 이미 최적화가 진행되어서 아날로그 대부분이 이미 특허가 걸려버린 분자도 있긴 합니다만... 

 그리고 굳이 특허가 걸려 있다고 해도, 특허 자체를 구매해버리면 될 텐데요. 제가 듣기론 대형 제약사들은 논문 탐색을 많이 하고, 그냥 알려진 물질의 특허를 구매한다는데 그게 오히려 더 현실적인 게 아닌가 의문이 듭니다. 

 새로 분자를 탐색하는 비용이 적을지, 그 특허를 구매하는데 드는 비용이 적을지... 

 그리고 해당 타깃에 대해 이미 결합하는 물질이 보고되어 있다면, 그 물질도 신약개발 과정에서 나온 것일 텐데, 그 물질의 타깃 질환이 무엇이고, 그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 중인지, 진행하다 멈춰버렸는지 멈췄다면 왜 멈췄는지... 이런 것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는다면 새로 설계한 분자도 동일한 문제를 겪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겠죠. 

 이런 점에서 생각하면, 인공지능으로 hit 탐색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약물의 유효성과 신약개발 성공 가능성을 더 정확히 예측할 방법을 찾는 게 나은 게 아닐지 의문이 듭니다. 

 

3. 신규 분자는 얼마나 새로워야 하는가?

 특허를 피할 수 있을 만큼 이겠죠. 말은 쉽지만 내용은 어렵습니다. 특허에 적용되는 범위는 특허 문서에 등재된 분자, 혹은 Markush 청구항인 것 같은데, 분자의 유사성이 높다고 해서 꼭 특허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인실리코 메디슨의 GENTRL 논문에서 탐색된 분자도, reference 중에 유사한 분자가 있지만, 분자 일부가 고리가 되면서 스케폴드가 달라졌고, 새로운 분자가 되었습니다. 만약 이런 분자가 신규 분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기존에 알려진 분자를 최적화할 때, 특허의 빈틈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에 그렇게 최적화된 분자가 많다면, 이미 해당 타깃에 대한 약물 개발은 상당히 진전되었을 테니 상업성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암과 변이 된 단백질을 타깃으로 할 경우, 단백질의 새로운 변이가 약물에 대한 내성이 될 수 있는데, 이런 단백질에 잘 결합하는 분자를 설계할 때는 기존에 알려진 분자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리고 kinase 같은 경우는 구조 다양성이 높기 어려워서 Markush 청구항은 잘 인정되지 않는다고도 하고요. EGFR 같은 경우는 약물이 여러 가지인데, 구조가 유사한 것들도 많습니다. 이런 타깃에 대해서 완전히 새로운 분자를 찾겠다고 하는 것은 별로 좋은 접근방법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결국 일괄적인 방법보다는, 내가 타깃으로 하는 질환, 단백질에 따라서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4. 단백질-약물 결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단백질-약물 결합에서 중요한가?

 그걸 알면 아마도 단백질-약물 결합을 잘 예측할 수 있겠죠. 

하지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나마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분자가 단백질의 포켓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정도입니다. 수소결합은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생각보다 hydrophobic이 중요하고, entropy도 중요하고, water도 중요합니다. 견고화 하나만으로도 결합기가 바뀐 것도 아닌데 결합력이 10배씩 올라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단 붙는 분자를 만들어야 결합력을 더 강하게 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일단 붙을 수 있게 생긴 게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