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특정 단백질에 결합하여 단백질의 기능을 활성화하거나, 저해하는 약물로 한정해보겠습니다.
uniprot에 등록된 인간의 단백질은 2만여개정도입니다.
단백질들은 기능에 따라서, 진화적인 이유로 서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조가 유사한 단백질들을 패밀리로 묶으면 1000~2000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같은 패밀리에 속한 단백질은 포켓 구조까지 유사하고, 따라서 약물에 대한 결합력도 유사한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서 거꾸로 생각해보면, 내가 어떠한 타겟 단백질의 어떤 포켓에 결합하는 약물을 찾고 싶다면, 기존에 신약으로서 개발되던 (적어도 임상 1상 이상까지 진행된), 약물중의 누군가 중에서 타겟 단백질의 포켓에 결합할 수 있는 약물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같은 패밀리에 속하는 단백질을 타겟으로 개발된 약물이 있다면 가능성은 더 높겠죠.
소위 약물 재창출 (drug repurposing, drug repositioning)이라는 분야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가지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이미 개발된 약물을, 다른 적응증에 대해 사용하는 것인데, 임상을 통해서 새로운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는 경우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의도해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유명한 예시로 탈모 치료제인 피나스테리드(프로페시아)는 원래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였고, 미녹시딜은 고혈압 치료제였습니다. 알려진 약물을 재창출할 경우, 특히나 이미 임상을 통과하고 시판된 약이라면, 약효에 대한 임상은 필요하지만, 독성, 안전성에 대한 임상은 이미 진행되어있으니 처음부터 약물을 만드는 것보다는 빠를 것입니다. 다만, 물질특허는 이미 걸려있으니 가질 수 없고, 용도특허만을 낼 수 있겠죠. 어떤식으로든지 기존에 약물을 보유한 회사가 유리합니다. 상업적으로는 특허의 문제로 특허권을 가진 회사가 아니라면, 수익 모델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질특허를 보유한 회사 입장에선, 자신들이 개발하고 생산라인도 갖춰지고, 이미 많은 데이터를 가진 약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입니다. 또한 상업적인 관심을 떠나서 당장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의 입장이나, 병을 고쳐야 하는 의사의 입장이라면 그 약으로 누가 금전적인 이익을 보는가를 떠나서 약이 하나라도 더 개발되는것이 병을 치료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생물정보학은 데이터가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강력해지기에 어떤 의미로든지 약물 재창출은 앞으로도 중요한 주제로 남을 것입니다.
약물 재창출에 사용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애초에 타겟 단백질이 여러 질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처음부터 하나의 약물에 대해 여러 질환을 타겟으로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타겟 단백질을 모르거나, 기존 약물의 원래 타겟 단백질이 아닌, 다른 타겟 단백질에 대해 약물 재창출을 시도하겠다면, 완전히 실험 기반으로 세포 실험을 하거나, 유전체 실험 데이터를 활용하거나, 단백질에 대한 결합 시뮬레이션을 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특정 약물은 개발 과정에서 선택성을 높히기 위해 타겟 단백질에 대한 결합력만이 높아지도록 최적화가 됩니다.
만약 off-target에 대해서 약물 재창출의 방법을 활용 하고 싶다면, 약물 재설계를 시도하는 편이 좋습니다. 즉, 약물 재창출 방법으로 찾아낸 분자를 새로운 타겟 단백질에 대하여 결합력이 높아지고, 원 타겟에 대한 결합력은 낮아지도록 분자를 다시 디자인해서 최적화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발된 약물은, 원래 약물과 어느정도 유사하지만, 새로운 물질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혹은 의도적으로) 특허를 피할 수 있을만큼 변경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단점으로 이 물질은 새로운 물질이기 때문에, 약물 재창출과는 다르게, 독성이나 안전성이나 약동학 (PK)적 특성은 검증이 되지 않았으므로 임상을 처음부터 제대로 진행해야합니다.
이 방법의 장점은,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것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만약 재설계 대상인 분자가, 타겟 질환에 대해 효과가 있었다면, 재설계된 분자도 그 질환에 대해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약개발 실패 원인 중에는 타겟을 잘못 선택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약효가 낮을지라도 약물 개발 전에 먼저 타겟 검증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유리합니다. 타겟이 druggable인지 아닌지는, 결국 약물이 존재해야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약물이 단백질과 결합한다고 해서 그 약물이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 많습니다. 약동학적인 영역 (ADME)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생체내 환경이 시험관과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애초에 타겟이 잘못 설정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물질을 처음부터 만들어서 어느 단계가 문제인지 모르는 채로 시작하는 것 보다는, 이미 기존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약물을 참고할 수 있는 경우가 성공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존에 알려진 약물과 유사한 약물을 탐색하기 위한 방법론들은 많이 개발되었고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pharmacophore model 입니다. 도킹이 느리기 때문에 도킹 구조를 사용하지 않고 빠르게 탐색하는 ligand based method와 도킹 구조를 사용하는 structure based method가 있습니다. 도킹 스코어의 정확도가 낮고, 도킹 구조 중에서 가장 native-like인 구조가 누구인지 찾는 것도 쉽지 않은데, pharmacophore model 을 사용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코스트로 도킹의 단점을 어느정도 보완해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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