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어디 인간뿐이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측정(상호작용)이라는 행위를 통해서만 알 뿐 직접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동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감 능력은 초자연적인 것도, 영적 능력도 아니 닙니다. 도덕감정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의 견해에서 동감은 타인이 처한 상황을 자신이 겪는다고 상상함으로써, 그 사람이 느낄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도 그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중에서도 특히 그 감정을 느끼는 현상은 매우 신기하고도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동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생각해보면 동감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윤리 의식은 이러한 동감 능력에서 출발하는 것이 많기에 동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비윤리적인 사람이나, 잠재적 범죄자처럼 생각하기도 하지만, 굳이 동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동감이 타인의 상황을 자신에게 비추어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어떤 사람이 분노나 슬픔, 기쁨을 표현했다 할지라도, 타인은 그것만 보고 동감을 하기보다는 그 이유, 처한 상황을 알아야 동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연히 직접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비춰서 추론하는 것이기에 한 사람이 생각한 다른 사람의 마음은 사실은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타고난 천성과 경험에 따라서 서로 다른 점이 있으니까요. 동감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유사한 사람끼리 동감하는 것이 서로 다른 사람과 동감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런 동감으론 인간들은 서로에 대해 근본적이고 완벽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 사이에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것을 이해할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이해할 수 없어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인정하겠다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 틀렸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것은 오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로가 추구하는 게 다르고, 서로 경험이 다를 뿐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할 수 있나요?
참과 거짓은 사실 관계에서만 있는 것이고, 옳고 그름은 어떠한 가치관 하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다르다면 옳고 그름도 달라집니다. 그래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끼리는 최소한 어느 수준 이상의 공통된 가치관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해야 한다거나,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같은...
우리는 불가능한 일은 포기할지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타인과 협상을 하기 위해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비록 인간이 초능력자가 아니니 마음을 완벽하게 읽는것은 불가능할지라도, 동감에 의지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그리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냥 상대가 처한 상황을 알고, 그때 나라면 어떨까를 생각해보면 되니까요. 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하려고 결심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죠. 조금 더 나아가서, 내 가치관이 아니라 상대의 가치관에서 어떻게 느낄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도, 어떤 가치관과 경험을 가졌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느낄 수 있으니까요. 이것도 하려고 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단 하나의 일관된 가치관만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이 오히려 더 드물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문제를 접했을 때, 갈등하는 것이죠. 일관된 가치관만 있다면 그 갈등조차 필요 없습니다. 비록 의인일지라도, 의를 보고서도 자신의 안위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생명과 이익이 소중하다는 생각과 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생각에서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나를 보고 어떻게 느낄지, 내가 타인의 입장이었다면 무엇을 원할지 생각해보면 의외로 많은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 지도교수님께서 저에게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예. 그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대부분의 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니까요. 만약 좋은 발표를 하려면, 발표를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내가 청중의 자리에서 앉아있고, 누군가가 발표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저 사람과 저 발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뭐 내 분야가 아니라면 그냥 별 관심 없고, 지루하다 라고 느낄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나라면 어떨 때 관심을 가질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대충 답이 나옵니다.
그나마 흥미가 있어서 발표를 들으러 온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자기 일에 나의 발표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온 것일 것이고, 그게 무엇인지 알아야 그 사람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내가 투자자를 모집하는 입장이라면 어떨까요? 반대로 내가 투자자라면, 그리고 투자를 할 생각은 있어서 왔다면, 나는 얼마 정도의 돈을 얼마 정도의 기간 동안 투자할 생각이 있겠죠. 규모와 기간을 정하지 않고 어떻게 투자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얼마 정도 수익을 원하는지, 안정성과 위험성에 대해 저울질할 것이고, 그런 것을 투자 유치자가 어느 정도 제시해주고 내가 그 사람의 말에 대해서 판단할 근거를 제공해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사업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이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그 분야의 시장의 (잠재적) 규모와,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점유율, 그리고 매출과 이익률 등으로부터 수익을 추정할 것입니다. (만약 데이터가 없다면, 최대한 유사 사례로부터 데이터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런 정보들을 제공하면 투자자 입장에선 자신이 그 정보로부터 다시 독자적으로 분석을 해보고 투자를 할지 말지 결정하겠죠. 투자자가 원하는 것은 투자 수익이기에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투자 수익을 추정하는데 필요한 데이터를 줘야 합니다.
저는 대학원생 시절에 참 무능하고 한심한 학생이었지만, 어느날 다른 학생들의 발표를 보면서 발표자가 자신의 연구를 자신이 주도해나가고, 얼마나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를 보고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노래를 잘하기 위해선 자신이 노래하는 것을 녹음해서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절대 하기 싫은 일 중 하나입니다. 해보면 좌절을 경험할 것입니다. 자신이 느끼는 자신과, 남의 입장에서 보는 자신은 전혀 다릅니다. 거울은 좋은 물건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바라볼 수 있게 해 줍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과,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아는 방법은 같습니다. 내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위해선 내가 타인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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