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에서의 정의는 가치관의 수만큼이나 다양합니다.
무엇이 옳은가? 그것은 가치관마다 다릅니다.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전부 만족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드뭅니다.
그나마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관 정도는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모든 사람이 동의하진 않고, 동의한다 하여도 따르진 않습니다.
절대적인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따르는 가치관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인간이 다툼을 끝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서로 동의하고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로남불은 안됩니다. 정의에 대한 가치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선택이 가능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실과 가치판단이 마구 섞여 있는 어려운 문제들을 많이 경험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완벽한 존재이기에 모든 것을 알지도 못하고, 언제라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할 수도 있고, 논리적인 사고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한 인간이 모든 것을 안다고 가정하는 것이나 알려진 일이 전부 사실이라는 가정은 인간세상에선 비현실적인 일입니다.
이럴 때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절차상의 정의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툽니다. 둘은 무엇 때문에 다투고, 그중 무엇이 옳은지, 누가 사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누구의 가치관이 좀 더 올바른지... 그런 것을 절대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가능할지라도 가치관에 절대적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툼을 멈추고 합의를 보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혹은 대다수의 사람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가치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제삼자가 자기 주관만으로 간섭하는 것은 또 더 위험한 일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사실과 가치의 문제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먼저 사실 관계를 명확히 판단하고 그리고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묻고, 그 가치 관중 무엇이 사회에 더 보편적인지 판단합니다.
절차상의 정의에 대해선 많은 가이드라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현실에선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사실관계가 명확해질 때까지는 중립을 지키켜야 하지만, 사실관계를 파악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쪽의 주장만을 수용하는 일도 흔합니다. 거짓 정보로 논점을 흐리거나, 한쪽에 유리한 사실만을 받아들이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한쪽의 편을 들면서 다른 주장을 할 기회 자체를 박탈합니다.
저는 많은것을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지식이 많지도 않고, 현명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에 판단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일찍이 하이젠베르크는 "정견은 큰 소리로 선전하거나 실제로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그 목표를 바탕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에 따라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부당한 수단은 이미 그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장본인부터 그 명제의 설득력을 스스로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이 절차상의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정의인지, 우리는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어떠한 보편적 가치관에 기반하여 그것을 판단하는 절차를 제시하고 ("과학적 방법론 및 과학적 사고"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 절차 하에서 문제가 없다면 그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절차를 지키지 않는 행위는 아무리 추구하는 동기가 그럴듯해 보여도 정의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이젠베르크와 마찬가지로 제가 경험으로부터 배운 것도 그러합니다. 절차를 어기고서, 과학적 방법론을 버리고서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을 윤리에 적용해선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이나 윤리나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 (0) | 2021.10.12 |
---|---|
반려 동물과 인공지능 (0) | 2021.09.07 |
인간이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 (0) | 2021.08.01 |
스타트업에 필요한 사람 (0) | 2021.07.23 |
신기한 나무: 연리지...? (0) | 2021.07.21 |